우리에게는 낯선 노동자 신문. 그 노동자 신문을 만드는 노동자 신문사를 다
녀왔다.

종로구 평창동 주택가에 다른 주택과 별반 차이가 없는 한 양옥주택에 바로
노동자 신문사가 위치하고 있다. 큰길에서 주택가로 들어서서 보면 노동자 신
문사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고 한 20여미터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신문사를
찾을 수 있다.기관지의 성격과 자본언론에서 벗어난 노동자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노동자 언론의 필요성에서 창간되었다는 노동자 신문. 하지만 찾아간 그
곳은 생각과는 달리 매우 협소한 공간이었고 매우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
었다.

서울의 본사는 편집국과 업무부로 나뉘어져 있다. 편집국에는 8명의 기자와
전산실 요원 2명, 그리고 편집인 1명, 발행인겸 편집국장 1명 등 총 12명의 인
원이 일하고 있었고 업무부는 영업, 총무, 광고등 세부서로 나뉘어 4명의 인원
이 일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공채와 특채등으로 선발된다고 한다. 지방에는 부
산, 포항, 구미에 지국이 있으며 광주에 지사가 있고 경기 부평에 지역 본부가
있다. 업무국의 한분은 앞으로 지사나 지국은 본부체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라
고 했다.

1989년에 창간된 노동자 신문은 화요일과 금요일 주 2회로 발행되는 시사지
이지만 신문의 성격상 많은 부분을 노동자와 노사 문제에 할애한다. 신문사의
민왕기 기자는 "노동자의 눈과 귀와 입이 되는 신문이다"며 한마디로 신문의
성격을 밝혔다. 우리나라의 노동계소식 뿐만아니라 해외노동이라는 면을 실어
세계의 노동 소식을 전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위기와 관련 세계여러나라의 자
동차 회사들의 자구책과 경영특징등을 기사화 하였으며 고용안정위기와 관련
능동적 문제제기와 대안등 여러 가지 노동계내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의 기
사에서 신문의 특성을 살린다. 이러한 특성과 노동자 신문이라는 이름때문에
일반사람들은 시사지인 노동자 신문을 노동자들의 특정신문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 신문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시사지 답게 정치, 경제, 사
회, 문화등 다른 시사지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의 모든 문제를 다룬다. 또한
사회에서 화제가 되는 문제는 특집면을 구성하여 다채롭게 보도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사창가 단속과 관련 그것에 관한 특집면을 만들어 그것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들을 점검하기도 했다.

노동자 신문사는 신문제작이외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인다. 여러 노동단체
와 노조들이 내는 인쇄물과 관련 그에 대한 노보 편집자 교육을 벌여 3천여명
의 인원을 배출하였으며 이같은 사업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외 해외
연수를 계획하여 일본, 중국등 여러나라에서 연수가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노
동자 문화제도 계획했고 지금의 노동단체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문화행사의
전신을 만들었다고 민왕기 기사는 신문사의 초기 행사에 대해 설명했다.

노동자 신문사 역시 많은 여러움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재정상의 문제와 인
원부족에 많은 고충이 있죠"라며 민왕기 기자는 독자적 재정으로 움직이는 신
문사의 힘든점을 지적했다. 어떠한 노동단체에 지원금없이 구독료와 광고료만
으로 움직이는 신문사는 요즘의 경기불황때문에 광고도 많이 줄었다며 한층
더한 고충을 말했다.이러한 여러 어려움속에서도 노동자 신문이 일간지와 같
이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찾아오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우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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