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정당에 휘둘리지 않는 강단 있는 총학생회’란 기조는 언제나 비운동권 선거운동본부의 차지였다. 게다가 우리대학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특정 정당, 단체 가입을 명시하라’란 권고는 운동권 선거운동본부를 두 번 죽이는 행위였다. 정, 부후보가 모두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그 선본은 득표율 27%로 67%를 획득한 비운동권 선본에게 두 배 이상의 표차로 패했다. 마치 지난 17대 대선 마냥 ‘운동권’이라 불리는 선본은 힘없이 무너졌다.
 
  운동권 선본의 공약이 대단히 장기적이었던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던 공약도 있었지만 이들의 선거운동 기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학생들의 가능성을 모두가 힘을 합쳐 발현해내자’는 그들의 기조는 학생 자치의 실현은 물론 학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 사회의 변혁요구를 담고 있었다. 이에 반해 당선된 비운동권 선본의 공약은 대부분 가시적이고 단기적 공약이 많았고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임시방책 수준의 공약이 많았다. 
 
  건국대에선 매해 총학생회장 선거가 진행될 때마다 운동권이냐 비운동권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언제나 ‘비정치’ 레토릭은 ‘운동권 선본은 사회 사안에만 더욱 관심을 두고 학내에 대해선 무관심’이란 비운동권 선본의 네거티브로 작용한다. 한편으로는 운동권 색채를 띠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총학생회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까’부터 ‘학교가 빨갱이에게 넘어갈 모양’이라는 낯부끄러운 말까지 들린다.
 
  학우들의 의견 수렴절차가 없다면 ‘탄핵’이란 것도 있고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 총학생회의 무분별한 그 ‘정치적 행동’을 막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헌데 지금 ‘자유민주주의’는 ‘학생들의 권리를 위한 행동’이라는 지극히 민주적인 활동을 ‘운동권’이라고 치부하는 모양이다. 오히려 그렇게나 조마조마하시는 유권자분들이 많은데 단순히 운동권 학생이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고 ‘학교가 넘어 간다’라니. 아직까지 당신의 세상은 ‘유신독재’에 머무르고 있진 않은지 궁금할 정도다. 
 
  중앙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한 선본의 정후보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요구에 연대했고 용산 철거민 사태 해결을 위한 집회에 나섰다는 이유로 ‘운동권’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오히려 공약만 보면 건국대에서 이들은 ‘비권’이라 불릴 선본인데 말이다. 
 
  ‘대학생답게’라는 추상적인 용어는 사용하지 않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자신과 속한 집단의 권리를 위해, 혹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변혁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을 ‘운동’이라 이름 붙이면 누구나가 ‘운동권’이 될 수 있단 것이다. 학우들을 위한 공약을 평가하기보다 이들에게 ‘운동권’이란 명함을 붙이고 ‘정치활동’을 한다고 해명을 요구한다. 대단히 파시즘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부디 공약만으로 총학생회 선거에 임해 주실 순 없는가.
 
 
김현우 편집장
건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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