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환학생으로서 두 학기를 보내게 된 도시 릴(Lille)은 프랑스의 노드 파 드 깔레(Nord-Pas-de-Calais) 지역의 공업도시로 프랑스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다. 런던과 비행기로 단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하며 날씨도 런던과 매우 흡사하다. 여름에는 밤 열시까지도 해가 쨍쨍하지만 늦가을만 돼도 몇날 며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칼바람이 부는 일상이 이어진다. 때문에 해가 뜨면 너도 나도 밖으로 나와 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궂은 날씨와는 정반대로 릴 사람들의 마음은 푸근하기만 하다. 릴은 프랑스 내에서도 친절한 도시로 평판이 좋다. 이러한 평판에는 릴의 인구 중 블루칼라의 서민층 비율이 높다는 것이 한몫하는 듯하다. 물론 이 평판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보낸 두 달 동안 모르는 이들이 베푼 호의 덕분에 이역만리 프랑스에서 먹고 살기가 한결 수월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구라도 릴 사람들의 친절을 경험하면, 많은 프랑스인들이 릴을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친절한 릴루아즈(Lillois)들도 언성을 높이며 불평하는 주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남부 사람들’이다. 릴 주민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곧 남부지방에 대한 북부 사람들의 스테레오타입을 알아채게 된다. 만나는 이들마다 하는 말은, ‘파리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남부인들은 게으르고 불친절하다. 친절한 사람들은 오직 북부인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최근에 남부인들과 동업을 하게 되었는데,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항상 ‘나중에 하겠다’라는 말만 반복한다며 몹시 힘들어하셨다. 또 학교에서 만난 친구 한 명은 남부에는 부자들이 많기 때문에 태도가 거만하고,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굳이 릴이 아니라 프랑스 북부 지방의 어느 도시를 가도 이런 불평은 쉽게 들을 수 있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남부 프랑스를 잘 모르는 외국인으로서는 이런 스테레오타입들이 매우 흥미롭기만 하다. 
 
 그렇다면 북부 사람들은 항상 완벽하기만 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남부 사람들도 할 말이 많다. 북부지방에 대한 남부 사람들의 스테레오타입은 ‘비앙브뉴 셰 시티(Bienvenue chez les Ch’tis)’라는 프랑스 영화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영화는 평생 남부프랑스에서만 살아 온 주인공 남자가 가족과 떨어져 베르그(Bergues)라는 프랑스 최북단 도시로 전근을 간다는 이야기인데, 북부프랑스에 대한 주인공의 공포(?) 때문에 배를 잡고 웃게 된다. 리옹도 아니고, 파리도 아니고, 그보다도 더 북쪽인 베르그라니! 항상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사는 남부 프랑스인에게 춥고 눈비 내리는 파 드 깔레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시베리아나 남극과 동일시된다. 게다가 북부 프랑스인들은 촌스럽고 알아듣기 힘든 이상한 사투리까지 사용한다. 이렇게 남부 사람들에게 북부는 척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만 잔뜩 모여 살고 있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릴에 살면서, 또 방학 동안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스테레오타입은 스테레오타입일 뿐이라는 것이다. 항상 춥고 흐린 공업 도시이지만 릴 구석구석에서는 미술 전시나 콘서트가 끊이지 않아 문화와 여유를 즐기는 릴루아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남부 사람들도, 지중해의 햇살이 제공하는 여유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들이다. 위에 나열한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지식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구분 짓고 배척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관용하고 서로 이해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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