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업으며 키워온 '온쪽이'의 꿈

`반쪽이'. 태어날 때부터 눈도 팔도 다리도 하나뿐인 반쪽이었지만 온갖 천
대와 멸시를 딛고 일어나 세상을 구제하고 정의를 구현한 우리 옛 이야기의
주인공을 최정현이 스스로 `반쪽이'라 이름지은 것은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반쪽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쪽으로 쪼개 놓은 달걀 껍질같은 낙관 속
의 숫자는 분단된 햇수를 가르킨다.

이 반쪽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최정현은 주완수, 김성인 등과 더불어 80년대
중반부터 불붙기 시작한 민중만화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작가중의 한 사람이
었다. 다소 거친, 그리고 투박한 그러나 직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
정권에 직격탄을 쏘아대었다.

80년대 반쪽이의 만화세계는 그의 시사만평집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
를 펼치면 한눈에 들어온다. 표제작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는 어린이가
노태우 후보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후보의 선거포스터에
만화의 말풍선을 그려 넣은 뒤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라고 속삭이게 만
든 절묘한 패러디다.

80년대 반쪽이의 만화세계를 이루고 있는 그물의 씨줄이 독재정권하에서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해방이라면 그 날줄은 극일 및 반미주의였고. 그 벼리는 통
일이었다. 우리 민족이 분단의 현실을 깨고 통일된 민족으로 우뚝서는 `온쪽이'
의 꿈이야말로 반쪽이의 영원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그의 만화에서는 만화적 표현이 가져다주는 푸근함보다는 만화속 현실
의 무게가 가지는 각박함이 생경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것은 때
로는 지나친 회화적 잔재로, 때로는 지나친 작위성으로, 그리고 가끔씩은 한참
들여다 보아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난해함으로 나타난다.그의 만화세계를 엿
볼 수 있는 또 다른 단면은 서울미대 시절부터 몸담았던, 스스로 `움직거리'라
이름 붙였던 애니메이션이다. 졸업작품으로 제작했지만 끝내 방영이 무산됐던
`방충망'은 도서관에서 투신자살하는 운동권 학생이 늘자 경찰에서 벌레를 막
는다는 명목으로 도서관 창문마다 방충망을 설치한 사건을 소재로한 것이었다.
대학졸업후 만든 `상흔'이나 `그날이 오면'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80년대 민중만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반쪽이는 90년대 들어 전혀 새로운 모습
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하나밖에 없는 딸 하예린(하늘에서 내린 예쁜 딸)
을 직접 키우면서 겪은 체험담을 `반쪽이의 육아일기'라는 제목으로 여성신문
에 만화로 연재한 것이다. 민중만화와 육아만화, 80년대와 90년대 반쪽이의 만
화세계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리는 대상이 달라진 것일뿐, 결코 기본이 바뀐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즉 80년대에는 5공이나 6공 등 타락한 정치권력이 민중을 핍박하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는 정치운동의 차원에서, 그리고 90년대는 왜곡된 사회.
여성현실을 바꾸기 위한 문화운동의 차원이라는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다.

`반쪽이의 육아일기'는 엄마가 아닌 아빠가 겪은 육아의 온갖 어려움을 생생하
게 기록함으로써 `아빠가 쓴 육아일기'라는 새 장을 열었다. 또한 일하는 아내
(반쪽이의 아내는 영화평론가 변재란씨) 대신 육아의 가정살림을 책임지는,
변화하는 사회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인 가족모델을 제시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가 정무 제2장관실과 여성신문사에서 수여하는 제1회평등부
부상을 수상한 것은 그 덕분이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 막힘이 없고, 육아와 여성문제 해결에 작게라도 도움
이 되고,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해주는 일거삼득인 만큼 손주 볼 때까지 계속해
서 그리겠다"라는 반쪽이의 건투를 빈다.

김이랑<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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