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만 매진하던 재수생 시절, 이주현 학생(철학과 2)은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우연히 영화 <황해>를 보게 됐다. 그 영화로 인해 그의 대학생활에서 영화가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영화를 그렇게 재밌게 본 건 처음이었어요. 왠지 모르게 ‘내가 영화를 정말로 좋아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 이후론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면 다 본 것 같아요.(웃음)” 상업영화에서 독립영화까지 안 본 영화가 없다는 그는 그렇게 영화의 세계에 빠졌다.
 
 고된 재수생활 끝에 찾아온 대학생활을 만끽하던 새내기 시절에도 그의 영화사랑은 계속됐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과내의 영화소모임 ‘무비’와의 만남도 시작됐다. 처음엔 학과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가 공모전에 내려던 시나리오가 무용지물이 되려던 그때, 소모임 내에서 그 시나리오를 영화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제작진 3명과 배우 7명 남짓의 작은 소모임은 그렇게 독립영화 ‘해피엔드’를 찍기로 결심했다.
 
 촬영 전 대본을 확인하고 있는 이주현 학생(왼쪽)과 제작진
  이주현 학생이 첫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촬영감독이었다. 단순히 영화보기를 좋아했을 뿐,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으로 촬영카메라를 잡았다. 촬영기법도 모르고 연출방법도 몰랐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작업을 시작했다. 벅찬 마음으로 제작에 돌입한 그의 첫 영화는 아쉽게도 실패로 끝이 났다. 배우들이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촬영이 지연되거나 촬영한 영상이 저장되지 않아 재촬영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결과물이었다. “인류가 종말을 3일 앞두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설정이었어요. 시나리오에선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는데 찍고 나니 공포, 스릴러물이 되어버렸더라고요.” 
 
 작업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로 인한 좌절은 없었다. 오히려 실패를 해도 그는 실패하는 과정에 만족했다. “사실 결과는 2차적인 문제고 영화를 제작하는 작업 자체가 너무 재밌어요.” 이런 그의 열정은 그가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연출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새 영화의 촬영도 지난 8월에 마쳤어요. 지금은 편집을 마무리하는 단계고요.”
 
 이주현 학생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내일>의 대본을 썼다고 한다. 지난 7월, 집에서 자고 먹고 컴퓨터만 하는 비생산적인 생활을 반복하던 그는 쉬고 있어도 쉬는 기분이 아니었다고 한다. “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학원을 다녔는데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서 쉬는데 간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보냈어요.” 일상생활에서 휴식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얘기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한 그의 영화제작 작업은 이제 겨우 2년 차지만 나름 체계성을 갖췄다. <내일>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2편의 연작이 더 제작될 예정이다. “창작의 고통 끝에 대본을 짰어요. 쓰는 것 자체는 이틀이 걸렸지만 구상하는 데는 20일이 걸렸거든요.” 고통이 컸던 만큼 그는 양질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특히 <내일>의 마지막 작품은 독립영화제에 내볼만 할 정도로 시나리오에 대한 그의 기대감이 크다. 
 
 이주현 학생은 22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남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취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 바로 ‘영화’다. 그에게 영화는 자부심이자 유일한 낙이었다.
 
최현찬 기자 hcc@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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