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추적: 비정규직 노동자

 
불안정한 고용환경 아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설움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로 했습니다. 과중한 근로시간. 열악한 휴게공간. 위험한 노동환경. 실질적 고용주인 대학본부와 법적 고용주인 용역업체 사이에서 중앙대분회는 권리를 찾기 위한 첫걸음을 뗍니다. 중대신문이 그 걸음을 함께 해 보았습니다.
 
▲ 중앙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아침을 여는 청소노동자
 
  동이 트지도 않은 오전 5시 44분. 파란 LUCAUS 티셔츠를 입은 청소노동자 A씨가 탈의실을 나섰다. 공식적인 출근 시간은 오전 7시지만 사실상 6시 30분이면 모든 청소노동자가 출근을 마친다. 강의실이 많은 법학관의 경우 4시 30분에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도 있다. A씨는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많아지기 전에 청소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기 위해 일찍 출근한다”고 말했다.
 
  A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쓰레기 분리수거다. A씨는 쓰레기통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하며 쓰레기통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집어 올린다. 쓰레기통이 좁고 깊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A씨는 “그렇지 않아도 냄새가 역한데 더욱 괴롭다”며 “쓰레기통 교체를 요구했지만 시정이 안 된다”고 말했다. 
 
  분리수거가 끝나자마자 화장실 청소가 시작된다. 전날이 공휴일이었던 탓인지 휴지통엔 휴지가 넘쳐흘렀다. A씨는 변기 안까지 직접 손을 집어넣어 닦는 것도 서슴지 않으며 청소를 서둘렀다. 정신없이 청소를 하다 보니 1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아 쓰레기 봉지 세 개가 가득 찼다. 강의실, 복도, 계단 청소를 모두 마치고 9시가 돼서야 A씨는 아침을 먹는다. A씨는 “밑바닥 생활인 우리를 누가 알아주겠느냐”며 “그래도 이제 노조가 설립됐으니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변변찮은 휴게 공간도 갖지 못하고 있다. 일부 건물에서는 계단 밑에 마련된 쪽방을 탈의실 및 휴게실로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었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특성상 노동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 B씨는 “옛날부터 노조 얘기는 많이 했지만 회사뿐만 아니라 노동자끼리도 간첩 아니냐며 눈치를 봤다”고 말했다. 
 
 
우리의 권리를 찾아서
 
  지난달 27일 출범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중앙대분회는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해 내디딘 용기 있는 첫걸음이었다. 중앙대 비정규직 노동조합 학생지지자모임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가 중앙대 비정규직 노동자를 처음 찾아갔을 때만해도 노동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김진랑 조직차장은 “어머니, 아버지께서 혹시 일자리를 잃게 될까 봐 노동 환경에 대해 말씀하기를 꺼렸다”며 “당시 중앙대에서는 노조 조직화를 포기해야겠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과 만남을 가진 후에야 분위기가 호의적으로 전환됐다. 현재 청소노동자 121명 중 60명과 시설노동자 44명 중 9명이 중앙대분회에 가입을 완료했다.
 
  중앙대분회는 청소노동자 용역업체인 T&S개발과 시설노동자 용역업체인 금성소방산업과 단체교섭을 시도했다. T&S개발은 지난 2일 기본협약서 체결에 동의했으며 이전까지 청소노동자에겐 휴일이 아니었던 개교기념일을 유급휴일로 전환할 것을 수용했다. 하지만 금성소방산업은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친 후 교섭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교섭을 회피했다. 
 
  지난 4일 청소노동자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대분회 1차 조합원총회가 개최됐다. 이날 분회장을 비롯한 분회 간부가 선출됐다. 또한 조합원들은 용역업체와 체결할 보충협약서를 검토하며 안건을 요구했다. 특히 과중한 근무시간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계약상 학기 중 평일 근무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9시간이다. 격주로 근무하는 토요일 3시간을 포함하면 공식적인 근무시간이 주당 48시간인 셈이다. 실질적인 근무시간을 따지면 법적 근무시간인 40시간을 훨씬 초과하게 된다.
 
 
실질사용자는 대학본부

법적사용자는 용역업체

책임 전가하는 사용자들
 

간접고용 된 노동자
 
  이날 논의된 안건에 대한 협약은 용역업체를 상대로 진행된다. 대학본부가 외부 업체에 하청을 맡겨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는 대학본부지만 법적 사용자는 용역업체인 셈이다. 노동이 이뤄지는 장소가 학교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용역업체가 주체적으로 요구사항을 개선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또한 매년 용역업체 입찰이 진행되기 때문에 재계약이 불확실한 용역업체는 노동환경에 대한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용역업체를 배제하고 협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캠 총무팀 강승우 주임은 “회사를 건너뛰고 노동자와 직접 교섭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간접고용 하에서 불가피한 문제로 보인다. 현재 서울권 대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곳은 서울시립대뿐이다. 지난 3월 서울시립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며 임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정년이 65세로 정해져 내년 12월이면 약 40%의 노동자가 실직 위기에 놓이게 된다. 중앙대의 한 교직원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 가능성을 묻는 말에 “직접고용 시 다른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정년이 적용돼 평균 연령이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해고 위기에 처한다”고 답했다. 이에 김진랑 조직차장은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정년을 적용한다면 임금 역시 동등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저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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