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민주화’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특정 지역 비방,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 여성 비하 등 반사회적 행동이 논란이 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문제제기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에서 ‘일베 폐지론’까지 제기된 가운데 일베 현상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신진욱 교수(사회학과)를 만났다.

 

▲ 최근 일간 베스트 저장소에 게시된 글들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 최아라 기자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변화의 과정에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논의의 출발점이라면 해방이 되고 난 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몇 년 동안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당시 우익 테러리즘도 활성화됐지만 좌익의 무장봉기 또한 적잖게 일어나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사회 내의 폭력이 심각했다는 이야긴데 그것이 수그러드는 시기가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사회 내적인 폭력이 줄어들었단 말인가.
“그것보단 우익의 정치폭력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줄어들었다는 것은 사회 내의 자유주의적 목소리들, 진보적인 목소리들이 국가폭력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자유적인 흐름이나 진보적인 흐름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회 내에서 우익이 스스로를 조직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런데 민주화가 되면서 국가권력이 더 이상 한국을 우익이 지배하는 사회로 유지해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형성됐다.”

-이후 어떠한 변화들이 나타났나.
“민주화 이후 첫 번째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됐다. 그럼에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자유총연맹 같은 우익단체들이 생겨났다. 신군부의 2인자가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었음에도 우익이 스스로를 조직했다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체제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15년 정도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2004년, 2005년 노무현 정부시기에 이르렀을 때 한국 우익의 위기감이 굉장히 고조됐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들을 좌파정책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물론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제로 좌파적인 정책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징하는 우리 사회의 흐름, 그것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진보세력들이 국가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가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이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 우익세력에겐 충격인 거다. 이 시점에 보수명망가,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뉴라이트(신우익) 운동이 시작된다. 이들이 당시 주장했던 것은 ‘민주주의는 좋지만 민주주의가 과잉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과잉돼선 안 된다니.
“자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고 더 진보적인 주장들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뉴라이트가 이야기한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의 전통적인 반공자유민주주의였다. 한국적 특수성을 빙자해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에게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권교체는 민주주의가 망가지는 과정이었다. 노무현 정권 중반에 이르면 사회 내의 우익의 자기조직화가 본격화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 내에서 민주화에 대한 불만이 공공연하게 제기된다.”


-뉴라이트 이외의 우익단체들도 조직화됐나.
“당시 뉴라이트뿐 아니라 재향군인회 같은 군 출신의 우익단체들, 막강한 조직과 자금력을 가진 보수대형교회들의 정치화가 크게 이뤄졌다. 이미 이때부터 민주주의나 인권,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공공연하게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담론들이 우리사회에 팽배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사회적 흐름이 꾸준히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정권이 바뀌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굉장히 중요한 변화다. 2004년에 우익의 조직화가 이뤄지고 2008년에 정권이 바뀌었다. 이는 이미 사회 내에 광범위하게 조직된 우익세력들이 매우 우호적인 정치적 기회구조를 만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뉴라이트 그룹의 경우 엘리트 중심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핵심부처로 많이 들어가게 됐다.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뉴라이트 그룹은 사실상 더 이상 활동적이지 않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일베의 등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지금까지 설명한 맥락 위에 일베가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나타난 일탈현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진행되는 사회의 전반적인 우익화 과정에 놓인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일부에서는 일베가 실업자, 사회에서 천대받는 사람들,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이 사회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는 경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각은 신중하지 못한 온정주의다.”


-신중치 못한 온정주의라니.
“그 누구도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가설일 뿐이다. 다른 가설로는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보통 우리가 생각했을 때 사회에서 전혀 배제됐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일베에 들어가 보면 초등학교 선생님 인증, 교수 인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대뿐 아니라 30대, 50대의 사람들도 많을 수 있다. 일베를 소외당한 층의 왜곡된 자기표현이라는 식으로 단정짓고 온정주의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일베를 사회 불만 세력이라고 보지 않는 건가.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뭉뚱그려서 사회 불만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인 불만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 이러한 것들의 핵심은 보편주의다. 인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고 국가에 의해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보편주의를 부정하는 게 극우세력의 특성이다. 보편주의 이념 자체를 공격하는 이념적인 극우주의와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증오, 이 두 가지는 별개가 아니다. 일베를 사회 불만 세력이라고 규정하려면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베가 10대, 20대에 끼치는 영향력 아닌가.
“주요 이용층을 10대, 20대라고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특히 일베와 관련된 언행들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확산되면서 의도와는 무관하게 많은 10대, 20대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노출은 특정한 담론과 언어를 전파, 확산시키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많은 10대들이 이런 언행에 익숙해질 수 있고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특정한 가치관과 행동의 방향을 배우면서 자랄 수 있다. 우리의 5년, 10년 뒤를 내다보면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일각에서는 일베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쪽에 ‘일베 표현의 자유론’이 있다면 다른 한쪽엔 ‘일베 폐쇄론’이 있다. 나는 이 양극단이 현실에 다양한 결들을 매우 뭉뚱그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우 위험한 발상들이다. 예를 들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인 운지, 부엉이 같은 표현을 쓸 때 우리는 비난하거나 비판할 순 있지만 금지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본 합의와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주기엔 조롱의 수위가 너무 높지 않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조롱과 비난은 가능하고 진보 진영의 과거 권력자에 대해선 조롱하면 안된다는 식의 접근이다. 이건 설득력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이미지와 언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여러 차원에서 생각했을 때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등을 여기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여기서도 선을 넘어선 안 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한다고 보나.
“헌법에 명시돼 있고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합의돼왔다고 믿어온 정치체제에 대한 기본 합의, 그리고 사람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다. 정치체제의 기본원리와 헌법이 규정하는 기본권을 공공적으로 훼손시킬 목적으로 담론을 확산시킨다거나 행동하는 것엔 법적인 제재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예를 들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너무 싫어 ‘운지’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욕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욕하는 행위 그 자체도 자유민주주의다. 하지만 ‘독재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데모할 때는 군대를 동원해서 다 죽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공공적으로 확산시킬 목적을 가진 행동에 대해선 제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유주의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자유를 훼손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것을 제재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 일부 세력이 일베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다.
“세 수준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묵인, 두 번째는 고무, 세 번째는 지원이다. 묵인은 이들이 확장돼갈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모든 행동은 한계가 없어지면 폭력이 될 수 있다. 극우세력의 행동에 대해 묵인한다면 스스로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 들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 다음 한 단계 높은 것이 고무 단계인데, 나는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고무 단계란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 건가.
“우리사회 보수의 중심부가 너희를 지지하고 있다는 명시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보수 인사가 일베를 애국보수단체라고 옹호한 발언이나, 국정원에서 종북 사이트를 고발했다고 시계를 준 것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확인할 순 없지만 국정원이 정말 종북 사이트를 몰랐을까 싶다. 물론 투철한 반공신념을 가진 사람이 시계를 받아 오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행동들이 나오고 있는 일베의 회원에게 시계를 준다는 것은 그들을 독려하고 고무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일베가 오프라인 활동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보나.
“그건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집단화되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일베라는 집단을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분명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전체가 그 한계에 대해 확실한 메시지를 줌으로써 참여자들을 활동적인 보수 유저층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유해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불어 지난 10년 동안 우익적 담론과 행동들에 대해 진보 세력이나 중도 세력들이 좀 더 적극적이고 진지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베를 무작정 반대해선 안된다는 말인가.
“보수와 관련해서 나는 일단 건강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익이 크면 그 안에서 극우가 크게 돼 있다. 우익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해 민주적인 세력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베를 맹공격하면서 좌파 쪽에서 하지 않아도 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들에게 행동의 정당성을 주는 거다. 일베는 절대로 사회의 상처받은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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