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다. 월세, 보증금, 자취방, 전세…. 그간 심드렁하게 마주했던 이런 낱말들을 한 달간 끼고 산 탓이다. 지난 4주간 야심차게 뛰어든 주거 기획의 결과다. 세심한 독자들이라면, 매주 심층기획부 지면을 가득 채웠던 행과 열 사이에서 이번 주거 기획의 제목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에>. 한없이 가벼운 이 제목엔 나름대로 주거 기획을 구상하면서 고심했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우리는 중앙대생들에게 묻고 싶었다. 이 좁디좁은 흑석동의 골목 어딘가에, 정말로 ‘즐거운 당신의 집’이 있느냐고. 주거 기획은 이렇게 단순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됐다.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취재원들에겐 자취방이 적어도 즐겁지 않은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겨울에 수도관이 동파돼 주전자로 물을 끓여 썼다고 하고, 누군가는 옆집에서 ‘카톡왔숑’ 소리가 들린다고도 했다. 설마 싶었다. 그래도 번듯한 주택인데, 그래도 ‘보증금 500/월세40’인데 하면서. 반신반의하며 취재했던 그 무렵, 기자도 시기적절하게 자취생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방세를 쪼개기 위해 룸메이트도 뒀다. ‘우리집은 아니겠지’ 싶었는데 웬걸, 자취생활 일주일 만에 깨달았다. 값이 싸서 좁은 방의 실체를! 세 사람이 일렬종대로 누우면 빠듯할 정도의 공간엔 ‘환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방 청소를 하겠답시고 걸레질을 했다가 그대로 먼지를 들이마셔야 했다. 방음은 또 어떤가. 기자의 룸메이트는 매일 아침 옆집이 물 트는 소리를 모닝콜 삼아 일어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취생의 고충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걸었던 전화가 무안해졌다. 특별히 고생을 겪는 자취생은 없었다. 이 정도 고생은, 자취생들에겐 덤덤한 일상의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얻은 자취방은 ‘즐거운 나의 집’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질문으로부터 기사의 첫 문장은 다시 쓰였다. 집값이 비싸면서도 시설이 열악한 것은, 흑석동을 뒤덮은 뉴타운 바람과 경기 불황이 그 원인이었다. 나의 자취방 한 칸은 그러니까, 흑석동 뉴타운과 경기불황 때문에 이렇게 비싸고 좁은 거였다. 맥이 탁 풀렸다. 너무 ‘큰’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방값이 비싸다는데, 대학생이 손쓸 수 있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내로라하는 언론, 심지어 정부 당국조차도 대학생들의 대안주거 앞에선 묵묵부답이다. 이토록 빽빽한 주거 현실로부터 대학생들이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주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시행될 계획’이라거나 ‘착공될 예정’이라는 등의 뜬구름 같은 보도기사만 쏟아져 있다.
 
  4주간의 주거 기획을 갈무리하는 지금,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중앙대병원 옥상에 올라 바라본 흑석동의 전경이다. 재개발 사업이 완료된 구역과 아직 진행되지 않은 구역이 가위로 오려낸 것 마냥 구분돼 있었다. 무당벌레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의 노란 불빛과,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 단지의 하얀 조명…. 아파트 사이에서 위태하게 남아있는 이 주택가도 재개발 절차를 밟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다시 짐을 꾸려야 할 것이다. 대학생들의 주거현실은 점점 척박해지고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이 설 자리 역시, 점점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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