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강연하고 있는 모습

22일 첫 게르마니아 열려
스피노자, 다중을 말하다

 

 지난 22일 ‘2013 중앙대학교 게르마니아 금요콜로키엄’이 막을 올렸다. 독어독문학과와 독일유럽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게르마니아는 <‘대중’을 다시 읽는다>를 주제로 이번 학기 5차례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김누리 교수(독일어문학전공)는 “현대는 ‘대중사회’라고 불리는 사회임에도 정작 대중이라는 존재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며 “2013 게르마니아에서는 대중을 이야기했던 고전 열 작품을 다뤄보고자 한다”고 2013년 게르마니아의 취지를 밝혔다.


 22일 열린 첫 특강으로는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스피노자 정치학에서의 대중’을 주제로 발표했다. ‘스피노자’라고 하면 철학자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정치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에티엔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사상이 현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두 사상가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몰티투도(multitudo)”라는 개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이 몰티투도가 바로 ‘다중’, 즉 대중이며 스피노자의 정치학에서 핵심인 개념이다.


 스피노자는 정치학에 관련된 두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이 그것이다. 『신학정치론』은 1670년 유령 출판사에서 익명으로 출간됐다. 스피노자는 이 책에서 성서가 담고 있는 내용은 소박한 진리일 뿐이라며 신학자들만이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는 당대의 통념을 무너뜨렸다. 이런 파괴적인 성향 때문에 출판된 후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후반부에서는 정치학을 언급하며 ‘민주주의’를 가장 자연스러운 정치 체제라고 극찬했지만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대중’을 난폭하고 무지한 집단으로 묘사하는 등 대중을 불신했다. 그럼에도 스피노자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최고의 정치 체제로 여겼다.


 『정치론』은 스피노자가 미완으로 남겨두고 사망한 그의 마지막 저서이다.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최고의 정치 체제라고 평가했지만 정작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많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우매한 대중이라는 뜻의 ‘불구스(vulgus)’라는 단어를 쓴 반면 『정치론』에서는 다중이라는 뜻의 ‘몰티투도(multitudo)’라는 단어를 많이 씀으로써 다중의 역량(다중의 힘)을 인식하게 됐음을 알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스피노자는 다중의 역량이 곧 국가의 토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다중 스스로 국가의 통치자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스피노자에게는 통치 체제가 군주정·귀족정(소수 지배)인지 민주정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정치 체제의 토대엔 ‘다중’이 있으며 다중의 견해를 잘 반영하는 통치 체제일수록 민주적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그는 군주정일지라도 대중의 견해를 잘 반영한다면 안정되고 내실 있게 통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피노자 사후에 그가 말하고자 했던 민주주의에 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네그리와 발리바르는 몰티투도의 개념에 주목하면서도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네그리는 몰티투도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해방의 주체’라고 생각한 반면 발리바르는 몰티투도가 수동적인 일반 군중의 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네그리는 다중이 현대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는 EU, FTA 등의 제국에 대항하는 ‘능동적’ 존재라고 정의했으며 발리바르는 통치자들이 다중을 두려워하면서 반대로 다중도 통치자들을 두려워하는 ‘이중적’ 면모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사상가 모두 몰티투도, 다중의 개념이 스피노자의 독창성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스피노자에게 대중이란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인 존재다.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완성된 하나의 통치 체제가 아닌 끊임없이 개선으로 나아가는 ‘민주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대 게르마니아는 2000년에 시작돼 14년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다음 제156회 게르마니아는 <오르테가 이 가셋 : 대중의 반역>을 주제로 오는 4월 12일 아트센터 904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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