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면 수가 늘고 기사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고, 보도나 논설의 시각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채울 기사가 부족해서 사진이나 광고로 지면을 메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도 있다. 새 학기 들어 변화를 보인 지면들은 지난 학기 가졌던 의구심을 많이 진정시켜 준다. 특히, 소외되거나 간과되기 십상이었던 시선’(강사와 직원, 다른 대학 학생 등의 시선)들이 여기저기 코너에 포착되어 있는 건 매우 뜻 깊게 보인다.

  새로운 시도와 지면 구성들을 반기면서도 아쉬운 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표방하는 바와 같이, 중대신문은 친절한신문이 되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지난 호(1786)만 보더라도, ‘친절한 기자들이 모 계열에서 중앙사랑 장학금 지급액이 줄어든 이유를 소상히 파악하여 알려주고, 새로 취임한 총장이 어떤 사람인지도 가까이 알던 인사들의 입을 빌려 설명해주며, 도서관 사물함 배정에 혼선이 어떻게 일어났었는지도 책임자를 만나 이야기하며 전해준다. 독자(주로 학생)들이 궁금해 할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정말 자상하게 알려준다.

  신문이 사건이나 주요 인물에 관하여 사실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데 잘못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 상세함에 정신이 들어 있지 않으면 친절한보도는 한갓 가십에 불과할 것이다. 보도에 기자의 사적인 의도를 넣으라는 뜻이 아니다. 사실이 스스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는 사실적인기사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때 사실은 신문에 오를 이유가 있는 것이어야 하고, 충실하고 균형 잡히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사건의 뒷이야기를 소상하게 풀어주기 위한 사실보다, 대학 사회가 문제 삼아야 할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하고, 인물들의 발언이나 해명도 일방적이게 받아 전하기보다 그들이 불편해 할 진실 또한 캐물어 드러내야 할 것이다.

 

강태중(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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