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 학술을 읽다

음산한 괴물들이 등장하는 기묘한 분위기가 영화 내내 짙게 깔린다. 등장인물의 모습만 봐도 누구의 작품인지 연상할 수 있게 만드는 독특한 감독, 팀 버튼(Tim Burton). 현대카드의 아홉째 컬쳐프로젝트 팀 버튼 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드로잉, 영화뿐만 아니라 소소한 스케치까지 전시해 예술가로서의 팀 버튼도 볼 수 있다.


  팀 버튼(본명 티모시 월터 버튼)은 1958년 8월 25일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중산층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TV 만화영화와 기괴한 공포물을 좋아하는 특이한 소년이었다. 자전적 이야기라 밝힌 그의 처녀작 <빈센트>에서도 섬뜩한 상상을 하며 괴물을 좋아하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유년시절부터 가졌던 낯선 세계에 대한 흥미는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만들어낼 때도 그대로 반영됐다. “영화 속 인물들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고 말할 만큼 주인공들은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괴상하며 타인들에게 배척받는 ‘괴물’들이 그에게는 영감의 대상이며 사랑스러운 ‘뮤즈’인 것이다.
 

▲ 사진제공 엄 지씨

팀 버튼은 포스트모더니스트 감독으로 손꼽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총체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에서 벗어나면서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포스트모던 예술의 대열에 그의 영화도 끼어 있다. 팀 버튼 작품을 포함한 포스트모던 영화는 몇 가지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현실과 무관한 허구적 이미지를 활용하며 일반적인 이야기 구성을 뒤집는 등 실험적인 성향이 있다. 즉 기승전결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거나 다양한 시점을 보여주어 관객이 스스로 앞으로의 전개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에게 직접 영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팀 버튼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영화는 <가위손>이다. 주인공 에드워드가 살고 있는 ‘성’이라는 동화적 배경에서 허구와 현실의 혼합을 느낄 수 있다. 실재하지 않는 시공간이라는 포스트모던 영화의 특징은 이후 팀 버튼의 많은 작품에도 나타난다. 미국의 목 없는 기사 유령 전설을 바탕으로 한 <슬리피 할로우>의 영화 속 배경이 실제 공간과 세트장, 디지털 기술의 융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 속 배경 외에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의 화려한 색채와 뮤지컬 같은 구성, 톡톡 튀는 영상미 등은 현대 영상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팀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이 흉측한 외양을 이유로 배척받는 모습은 타인의 다름을 이해해주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이 역시 포스트모던 영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특징이다. <가위손>의 주인공 에드워드가 누명을 쓰자 처음에는 친절했던 마을 사람들이 순식간에 외면하는 장면은 미 중산층의 이중적 면모를 비판적으로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중산층의 대표적 거주지인 버뱅크에서의 유년시절 그가 느꼈던 소외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괴짜들을 개성 있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팀 버튼의 영화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니는 세기적 작품임은 틀림없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공개되는 전시회이며 뉴욕현대미술관의 도움을 받아 현대카드 컬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단독 팀 버튼 전은 이번 서울 전시를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으며 내달 1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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