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8일 일요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오후 6시 청룡합창단 OB멤버들의 공연이 열렸다. 사진제공 우효성

▲ 1980년 10월, 전국 대학생 음악 경연대회에서 합창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프롤로그
 얼마 전 TV오락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인기를 끌었다. ‘합창’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학예회에서 부르던 합창이나 반 대항으로 합창대회를 준비하던 기억들 말이다. 하지만 오래전 추억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도 합창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룡OB합창단원들이다.
이제는 잠자리안경 대신 돋보기안경을 써야할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누구의 엄마, 아빠이기 이전에 청룡OB합창단에선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합창단원들이다.
청룡합창단은 창단 42년이라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청룡OB합창단 정기연주회는 올해로 겨우 두 번째이다. 지금까지는 청룡YB합창단 정기공연의 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D-day)만큼은 무대 위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청룡OB합창단 정기공연이 열린다.
청룡OB합창단에서 만큼은 새내기로 통하는 예비졸업생 09학번부터 75학번까지 함께 모여 하모니를 낸다. 나이차이? 많다. 세대차이? 있다. 관심사? 전혀 다르다. 하지만 합창이라는 이름 아래 이것들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한 걸림돌은 바로 불협화음이다.
오랜 연습으로 노랫소리뿐만 아니라 서로와의 관계도 화음이 되어버린 청룡OB합창단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곧 시작된다.

▲ 11월 16일(금)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YB멤버들의 정기 연주회. YB와 OB멤버들이 손을 잡고 합창한다.

S#1 찬조공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어둠이 내리고 유난히 사람이 없는 11월 16일 금요일 오후 꽃다발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아트센터 대극장으로 모여든다. 바로 YB의 공연날이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오늘도 YB의 공연엔 선배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OB들이 찬조공연을 선다.
옹기종기 작은 동아리방에 모여 연습하던 YB들에겐 아트센터 대극장이 낯설기만 하다. 외우고 또 외웠던 안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공연 중간에 들어가는 소녀시대 메들리는 관객들을 위한 하이라이트다. 그런데 이 소녀시대 메들리가 골칫덩어리다. 여러가지 안무가 들어가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 자칫 조금이라도 어긋나 엉성해 보일까 걱정이다.
“차렷! 소원을 말해봐 다음 차렷이야!”
“손 허리 할 때는 손을 무조건 바깥쪽으로 하는 걸로!”
한편 객석에서도 누구보다 마음 졸이며 YB들의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YB들의 선배 OB들이다. 후배들이 실수할까 마음 졸이며 공연을 감상하다가도 후배들 공연 사이에 있을 본인들의 찬조공연 생각에 마음 놓고 후배들의 공연을 지켜보지 못한다. 후배들의 공연을 바라보는 중간에도 악보를 꺼내 자신의 파트를 확인한다. 
이제 OB들의 찬조공연 순서가 다가온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런데 OB팀의 지휘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OB들은 대타 지휘자까지 미리 구해놓았으나 자신들의 공연이면 몰라도 후배들이 오랜 기간 준비한 공연에 흠이라도 남길까 걱정이 된다. OB총무를 맡고 있는 김동민(경영학과 90학번) 단원이 앵콜을 유도한다.
애간장이 다 탈 때쯤 OB지휘자가 도착한다. 급해 죽겠건만 지휘자는 품격을 유지하며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앵콜 덕분에 다행히 큰 실수 없이 지나갔다. 앵콜이 끝난 뒤 간신히 바지만 갈아입은 지휘자가 무대에 오른다. 피아노 반주와 함께 OB의 찬조공연이 시작된다. 그제야 총무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급박했던 상황도 지나가고 어느덧 공연 막바지다. YB들이 마지막 곡을 부르면서 객석으로 내려온다. 객석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앉아있던 OB선배들의 손을 잡고 다시 무대에 오른다. 모두 무대에 올라 다 함께 손을 맞잡고 하나의 하모니를 만든다. 

▲ 평동캠퍼스에서 OB멤버들의 청룡OB합창단 정기연주회 최종리허설이 있었다

S#2 최종리허설
24시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내일 있을 청룡OB합창단 정기연주회까지는 최종리허설만이 남았다.
그동안 변변한 연습 공간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해야만 했다. 외부 연습실도 대여해봤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이 문제였다. 그래서 연습 공간을 대관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중앙대 부속 고등학교부터 서울캠 루이스홀, 외부 연습실까지 전전하며 D-day 준비에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최종 리허설 장소는 평동캠 강당으로 섭외됐다.
공연에서 선보일 곡을 반복해서 부른다. 수백번 연습한 곡이지만 할 때마다 실수가 보인다.
“여러분 오늘 연습 많이 한다고 잘하는 거 아니에요. 악보도 이제 내려놔요. 집중해요. 집중!”
시험 직전 펼쳐보는 교과서처럼 마지막까지 단원들은 악보를 내려놓지 못한다. 한쪽에선 지휘자의 시선을 피해 몰래 악보를 펼쳐본다. 순발력은 최고지만 암기는 젬병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강당 문을 열고 다급히 들어온 한 남자. 물 한 모금 마시고 곧바로 무대에 오른다. 시간을 낸다고 냈지만 바쁜 직장 업무 탓에 오늘도 지각이다. 잠시 후 지각생까지 무대에 오르자 드디어 흩어지던 소리가 하나로 모아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듣는 완벽한 하모니. 합창단원이기전에 사회인들이기에 한 자리에 모두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 평균 출석률 71.35%를 기록하지만 오늘만은 내일 있을 공연을 위해 모두가 예외 없이 참석했다.
최종 리허설이 끝나갈 무렵 또다시 문제가 터진다. 다름 아닌 아무리 해도 맞춰지지 않는 발음. 문제의 곡은 ‘Missa Festiva’의 ‘Festival Sanctus’이다. 최대한 정확한 박자를 유지하며 굳은 혀로 라틴어를 살아있게 발음해야 한다.
“지휘자님 쌍투에서 끝나요? 아님 쌍투스에요?”
문제는 타이밍이다. 합창 도중 제각각 튀어나오는 엇박자에 단원들은 가슴을 졸인다. 내일 실수를 연발하진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한다.

▲ 청룡OB합창단 정기연주회 공연 당일, 대기실에서 연습 중인 OB멤버들.
S#3 공연 당일
공연 30분 전. 대기실 문이 열린다. 순백색 드레스를 입은 합창단원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 중 한 단원이 ‘엄마’를 외치며 문 앞까지 한달음에 달려나간다.
공연을 앞둔 합창단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가족들이 대기실을 찾는다. 공연 시작도 전에 축하꽃다발 먼저 손에 든 단원들.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그때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여자대기실로 들어온다. 청룡합창단 캠퍼스커플 출신으로 결혼까지 골인한 임응규 단원(전자전기공학 81학번)이 아내이자 합창단원인 김재욱 단원(유아교육 82학번)의 얼굴을 보기 위해 대기실을 찾은 것이다. 그들은 오늘 한 무대에서 D-day를 맞는다. 떨리기는 매한가지다.
“우리 아들 아무리 군대에 있어도 그렇지  엄마 공연인데 어쩜 전화 한통 없니.”
한쪽에선 지인들의 지각에 애가 탄다.
공연 시작 십분 전이 돼서야 응원차 방문한 지인들이 대기실을 빠져나간다.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지인들 때문에 몇몇 단원들은 마음이 무겁다.
“이 드레스 한 번 입고 말기엔 너무 아깝지 않니. 우리 가족은 1부 끝나고 도착할 것 같은데 드레스 입은 거 못 볼 것 아니야. 공연 끝나고 사진도 찍을텐데 검은 정장은 너무 칙칙하잖아.”
공연 직전, 무대 뒤에서는 남자단원과 여자단원이 한곳에 모여 떨리는 첫 공연을 준비한다.
오프닝 곡을 부를 때만 입기로 한 드레스가 못내 아쉬운지 공연 직전 여자단원 하나가 용기를 낸다.
“우리 이 드레스 4부 끝 곡에도 입고 싶어요.”
“안무도 그렇고, 갑자기 의상을 변경하면 혼란스러워. 원래대로 가죠.”
1부 공연이 끝나자마자 여자대기실로 돌아온 단원들은 저마다 실수한 부분에 대해 성토한다. 2부 공연에 입기로 한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으며 한마디 한다. 
“다들 모여봐. 내가 드레스 이야기 한 번 더 꺼내볼게. 까짓것 안무야 수정하면 되잖아?”
이번에도 드레스가 화두다. 결국 준비해온 검은 정장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어졌다. 마지막 곡의 복장이 드레스로 바꼈기 때문이다.
공연이 막바지로 치닫자 다음 무대를 준비하던 합창단원들이 합창곡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대기실에 있는 또 다른 단원이 합창곡을 따라 부른다. 대기실, 무대 위에 서 있는 단원 모두 목소리를 더한다. 남자대기실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연습실에는 앉을 자리조차 변변치 않다. 원을 그린 채 서 있는 남자단원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합창한다. 그들의 노래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공연의 모든 순서가 끝났다. 드디어 무대 위에 선 지휘자의 지휘봉이 멈춘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그들의 노래가 멈춘다. 무대 위에서 내려온 청룡합창단원들을 향한 박수갈채는 멈추지 않는다.
 


 


김동민(경영학과 90학번) OB총무
기타만 있으면 만사 OK다. 그는 일명 기타맨으로 불린다. 노래방도 필요 없다. 만능 노래방 기계나 다름없는 그의  손끝에서 끝도 없이 노래 코드가 쏟아져 나온다.
“소음 때문에 여기저기서 항의가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학교 할머니동산에서 주로 기타를 쳤었죠. 할머니동산에 가면 꼭 사물놀이팀을 만나고는 했어요.”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입담 또한 뛰어나다. 덕분에 몇 년 동안 서먹서먹했던 YB와 OB 사이에 오작교를 놓은 삼신할배 역할까지 했다. 그는 스무해가 넘는 학번 차이가 나는 후배에게도 반강제로 ‘선배님’ 대신 ‘형, 오빠’로 호칭을 정리한다. 가까워지기 위한 그만의 노하우이다.
하지만 늘 웃음이 떠나질 않던 그에게도 사건이 터졌다. 이유는 공연날 그를 찾아온 가족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각자 바쁜 업무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고 한다. 서운함을 감출 수 없어 며칠 동안 집안에 냉기류가 드리웠지만 며칠전에야 극적으로 아내와 화해를 했다고 한다.


김으뜸(전자전기공학부 2)YB학생회장
올 초부터 청룡합창단 회장으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김으뜸씨. 
“저는 공대생인데 친구가 별로 없어요. 거의 청룡합창단 친구뿐이죠.”
너무 합창단 사람들과 어울렸나보다. 어느새 그도 김동민씨처럼 OB와 YB를 하나로 묶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는 록이나 가요보다 합창을 좋아하는 독특한 청년이다. 처음부터 그가 클래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그에게 있어 캠퍼스 로망은 대학 밴드부 활동이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청룡합창단 동아리방을 시작으로 그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비좁고 낡은 동방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끈끈한 선후배 관계가 그의 마음을 바꾼 것. 그날부로 그는 청룡합창단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그에게는 큰 고민이 생겼다. 바로 자신이 베이스 파트인데도 불구하고 음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 요즘 따라 선배들이 하는 말이 생각난다.
“연습! 무조건 연습만이 살길이야!”


[Cut]

▲ 공연 당일 날 여성단원들이 드레스를 입고 있다.

드레스 사수 대작전.
 그동안 여성단원들의 무대복은 검은 정장 또는 대여드레스였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다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여성단원들은 드레스를 구입했다. 맞춤사이즈가 아니기에, 드레스 착용시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아니 왜 55사이즈를 가져왔... 어? 이거 66이네.”
드레스가 민소매였던 탓에 여성단원들에게 또 하나의 주문을 하였다. 바로 겨드랑이털 제모. 마지막 곡의 복장이 드레스가 아닌 정장으로 바뀌었던 것도 바로 이 털! 때문이었다. 겨드랑이를 보이는 안무 때문에 차마 드레스를 입을 수 없었던 것. 공연 당일 갑작스럽게 마지막곡 의상이 드레스로 바뀌며 털·겨드랑이를 강조한 안무는 털과 함께 급하게 제모, 아니 삭제됐다.

[NG]

▲ 문인영 단원의 등에 가사컨닝페이퍼를 붙이고 있다.

 “누나 등판 좀 빌려줘”
합창단에서 테너를 맡은 황병삼 단원(토목공학 83학번)의 지정석이 있다. 바로 문인영 단원(유아교육 82학번)의 뒷자리다. 한 학번 선배인 문인영 단원의 넓은 등판이 컨닝페이퍼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를 작성한 컨닝페이퍼를 연습이건, 공연 때건 문인영 단원의 등에 붙이고 컨닝한다. 물론 이번 공연에도 예외는 없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문인영 단원 등 뒤에 일명 가사컨닝페이퍼 파스를 붙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드레스 선정 당시 여성단원들의 등이 파인 드레스를 반대한 것도 황병삼 단원이다.
“공연 중에 등에 땀이라도 나면 컨닝페이퍼 떨어진단 말이야.”
하지만 황병삼 단원의 컨닝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누나의 등짝은 여전히 건실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가 노안을 앓고 있는 탓에 컨닝페이퍼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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