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이라는 이름의 노동, 대학생 홍보대사

 

J(26)1)는 면접관들이 개인기를 요청하자마자 △△은행 찬가를 부른다. 트롯트 ‘무조건’을 개사했다. “△△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가사가 심히 오그라든다는 것, 그도 안다. 한순간의 쪽팔림이 무슨 대수인가. 시키면 바로바로,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노래를 끝내고 숨을 고르는 중 한 면접관이 묻는다. “자네는 평소에 △△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대답한다. “열정과 패기의 이미지로 20대에게 어필하는 젊고 다이나믹한 은행입니다.” 이렇게 하고서 번듯한 은행원으로 취업할 수 있다면 저 정도 쯤 감수할 수 있다는 사람, 요즘 많다. 하지만 여기는 정규직 신입사원 공채 최종 면접장이 아니다. ‘△△은행 대학생 홍보대사’ 면접장의 모습이다.

 

■ 대사님들의 미션수행

어느덧 홍보대사를 비롯한 대외활동은 취업을 위한 필수요소가 되었다.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홍보대사의 경우 경쟁률이 30~50:1에 달하며, 대외활동을 소개하는 카페 ‘스펙업’의 회원수는 2008년 7만명 남짓에서 현재 약 30만 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엔 대외활동 면접에서 떨어지지 않는 법, 대외활동에서 남들보다 무언가를 얻어가는 TIP 등 대외활동에서의 처세를 알려주는 게시글이 가득이다.

K(24, 법학과 3)는 작년 초부터 5개월 동안 모 은행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K는 홍보 유인물을 배포했고, 은행의 이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은행 농구팀이 경기를 할 때 관객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일을 했다. 학교에 해당 은행의 취업박람회가 열릴 때는 수업에 빠져서라도 그곳에 가서 ‘00은행 대학생 홍보대사’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안내를 맡았다.

K를 비롯한 대학생 홍보대사들이 하는 홍보 활동은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광화문, 신촌 등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해당 기업을 알리기 위한 플래시몹(Flash Mob)등의 이벤트를 벌이는 오프라인 활동, 개인 블로그를 활용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는 온라인 활동이 그것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SNS를 이용한 홍보활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대학 내에서 해당 기업을 홍보하는 캠퍼스 미션도 있다.

미션 ‘수행’은 개인 단위, 팀 단위로 나뉘어 이뤄진다. 앞서 언급한 온라인 활동들이 주로 ‘개인 미션’에 해당되며, 오프라인 활동이 ‘팀 미션’에 해당된다. 홍보대사로 선발되기 이전부터 ‘트위터 팔로어를 1,000명 이상 만들어 오라’며 사전 미션을 부여해 이를 통과해야만 면접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는 곳도 있다. 홍보대사로서 활동하기 위한 ‘자격’인 셈이다. 팀 미션의 경우 대학 내, 번화가에서 홍보 이벤트를 하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에서 행사용품 준비, 실행까지 모두 대학생들의 몫이다.

미션이 끝난 다음엔 활동을 UCC, 사진 등으로 기록해 개인 블로그, 대학생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다. 그리고 각 팀들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 홍보팀 직원들이 그것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데도 2~3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을 감안할 때 현장에 나가 미션을 준비, 수행하기까지 이들이 쏟는 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기업에게 대학생 홍보대사는 비용을 절감하는 좋은 수단이다. 별도로 고용하거나 외주를 주면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을 기업은 대학생 홍보대사들을 활용해 ‘절감’한다. 혹자는 대학생 홍보대사들의 홍보가 아마추어들의 활동이기에 기업의 이익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학생 홍보대사의 홍보 활동은 ‘아마추어’이기에 더 큰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다. SNS, 블로그를 통해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는 홍보를 할 수 있으며, 기업에 ‘젊음’의 이미지를 덧입힐 수 있는 것, 20대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장점이다.

대학생들이 기업 측에 제출한 아이디어는 20대의 소비 성향이나 취향,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실제로 활용된다. 홍보대사와 성격이 조금 다른 ‘대학생 마케터’의 경우 재무관리나 회계, 시장조사 같은 활동을 하며 이를 기업에 재출한다. 이를테면 ‘아이디어의 외주화’인 셈이다. 때문에 현재는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공공기관에서도 대학생 홍보대사를 모집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다.

 

■ 노동은 어떻게 미션이 되는가

K는 “이름은 홍보대사지만 하는 일은 그냥 아르바이트 같다”고 말했다.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기업에게 경제적 이익을 얻게 해주는 ‘노동’이었던 것. 하지만 홍보대사들의 노동은 ‘미션’이라는 이름이 잘 보여주듯 그 성격이 ‘놀이’인지, ‘봉사’인지, ‘노동’인지 활동 자체만 보아서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K를 제외하고서는 팀 내의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이를 잘 드러내 준다. “농구 구경하고, 활동이 끝난 뒤 (회사 직원에게) 족발을 얻어먹으면 애들이 그냥 좋아한다. 일은 일부라고 여긴다”고 K는 말했다.

소셜 네트워크 게임 개발사 ‘위자드웍스’의 경우 팀을 구성해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래번클로, 그리핀도르 등의 기숙사 이름을 붙여 소속감을 부여해 자연스럽게 경쟁을 유발하도록 한다. 대학에 가진 소속감을 이용해 학교 대항전을 벌이는 곳도 많다. 미션을 최종까지 잘 수행한 사람은 간혹 입사 시 서류 전형을 면제해주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에는 인턴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미션으로 탈바꿈한 노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닮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하며, 그 과정은 하나의 놀이다. 노동에 레크리에이션을 가미해 유희의 성격을 띄게 하면서 ‘노동’은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단순한 ’유희‘여서는 곤란하다. 뭔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홍보대사들이 동기와 목적의식을 갖고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는 우수 활동자를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하거나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과 ‘이미지’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에 대충대충 해서는 곤란하다. 기업은 대학생 홍보대사에게 상당히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 K의 경우 대학생 홍보대사의 관리를 맡은 직원이 “기말고사 핑계를 대지 말라, 전 기수들도 모두 시험기간에 활동했다”고 말하며 활동을 독려했다. 활동을 성의없게 할 경우 기업의 관리자에게 혼도 난다. 대사의 책임은 ‘학생의 그것’보다 막중하다.

그러나 임금은 없다. ‘활동비’라는 이름으로 20만원이 나오지만 홍보 활동을 위한 활동비인지 노동의 댓가로서 지급되는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며, 홍보 활동을 하는 데 쓰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액수 또한 활동 시간에 비해 매우 적다. K와 규진 모두 비교적 혜택이 풍부한 대기업 홍보대사 활동에 지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문화상품권 몇 장이거나, 약간의 협찬 물품이었다. 활동비는 미션 수행을 하는데 거의 다 쓰였다. 내게 돌아온 돈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주어지는 것은 ‘선물’이다. 활동 중에 기업으로부터 받는 협찬 물품들은 기업에서 주는 고마운 혜택이 된다. 노동이 미션으로 탈바꿈하면서 부리는 마술이다.

‘노동과 유희의 구분이 없어진 세상’은 많은 이들이 꿈꾸었고 전망했던 것이다.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 또한 ‘소외된 노동’의 철폐를 꿈꾸었고, 디지털 노마드를 운운하는 정보사회론자들도 앞으로는 새로운 IT 기술로 인해 ‘놀이’와 ‘노동’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러나 ‘노동’이 미션으로 탈바꿈하면서 노동의 ‘대가’도 함께 사라지게 된 것이 오늘날 청년노동의 모습이다.

 

■ 나는 왜 이렇게 힘든 활동을 무보수로 하고 있는 건가?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노동을 일컬어 흔히 ‘착취’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했던 ‘착취’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력이 실현한 가치의 일부인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잉여가치는 수탈하더라도 임금은 적게나마 주긴 준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홍보대사를 비롯한 대외활동의 경우는 착취를 넘어선 ‘초과 착취’(Over exploitation)라 할 수 있다.

 

“때로는 밤새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계속 토의를 하면서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활동을 무보수로 하고 있는 건가?’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OOOO 친구들이 잠도 못 자며 그토록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만큼의 가치를 얻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2)

 

어느 대외 활동에 참여한 한 학생의 수기다. 그가 ‘초과 착취상태’ 놓여 있음을 감안할 때 ‘왜 내가 하는 일에는 정당한 댓가가 주어지지 않으며,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가’라는 그의 질문은 정당하다. 곧이어 그는 ‘저렇게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 활동을 하는 데는 무언가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답을 내린다. 무언가 미심쩍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한다고 해서 그 일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회의감을 성급히 억누른 것으로 보인다. 맡은 일이 많았던 탓일까.

위와 같이 홍보대사들은 끊임없이 자기가 하는 활동의 ‘진정성’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면접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정당한 보수를 받지 않고서 일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며, 또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덜 회의하며 씩씩하게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렇다고 실제로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착취, 아니 초과 착취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힘든 활동을 왜 무보수로 하는가?”라는 저 친구가 못다 던진 질문을 대신 던져 보자. 앞서 노동과 유희의 구분이 흐릿해진 점을 지적했지만, 이를 정당화하는 것, 그리고 저 친구의 물음을 틀어막는 것은 ‘너희가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다’라는 열정 노동의 명제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는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며, 열정을 요구하고 그를 착취하는 식의 ‘취미 활동과 생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상’을 ‘열정 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며, 이를 IMF이후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 등장한 노동의 방식(착취의 방식)이라 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열정노동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2) 그러므로 나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3) 고로 나에겐 노동자의 권리가 필요 없다.3)

 

홍보대사 등의 대외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 또한 이 열정 노동의 논리를 따른다. 열정이 없다면 만들어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열정과 더불어 제시되는 것은 ‘긍정’의 수사다. 자기 계발, 자기 관리의 시대에 열정과 긍정적 마음가짐은 중요한 미덕이다. 대학생 대외활동과 관련된 정보들이 올라오는 네이버 카페에는 ‘스펙을 바라고 하지 말자, 진정성을 갖고 활동하자, 상황을 긍정적으로 여기자’며 서로 열정을 북돋우는 게시글이 가득하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는 우리를 곧잘 배신하기 마련이다. 『긍정의 배신』에서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만 보고,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긍정주의적 사고방식이 불편한 사회 현실과 시장 경제의 잔인함에 눈을 돌리고 ‘경쟁을 통한 성공’이라는 개인적인 문제해결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와 실패를 ‘나의 책임’으로 여기게 하는 것 또한 불합리한 체제를 보호하는 ‘긍정적 사고’의 힘이다. 그러나 K가 전하는 홍보대사들의 모습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K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상급자에게 다른 사람이 한 것까지 자기가 직접 한 것 처럼 보고해 서로 갈등을 빚은 적 있었다,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잠수’를 타는 학생도 있고, 활동을 하다가 스트레스성 대상포진이라는 피부병에 걸린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 20대의 군비경쟁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취업자가 50만명 이상이라는 보고를 받은 뒤 ‘고용대박’이라는 황당한 수사를 늘어놓았지만, 청년세대의 체감실업률은 11.3%에 달한다.4) 그러나 오늘날 대학가의 모습을 지칭하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탈정치’이듯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것이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는 20대는 드물다. 정치적 행동, 집단 행동이라는 선택지를 아예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20대의 스펙 경쟁은 군비 경쟁5)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실제로 개인의 업무 성과와 잠재력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낭비이며 불필요한 긴장과 비용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구를 수십 차례 폭파시킬 수 있을 만큼’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냉전 시기의 미국과 소련,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는 20대는 닮은 꼴이다. 군비 경쟁과 스펙 경쟁은 문제와 불안의 해결을 위해 각 주체가 “그것이 좋고 옳은 것은 아니나 상황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다”는 명분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의 증폭과 지속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결코 문제의 ‘답’은 아니다.

대학생 홍보대사는 그 답 없는 상태가 빚어내는 오늘날 청춘의 한 단면이다. ‘무급’으로 논란이 되었던 청년 인턴 또한 같은 맥락에서 나타난 양상이라 볼 수 있다. “그래도 모두들 다 하는데 안 하면 나만 손해가 아닌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만났던 대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스펙 경쟁에 뛰어든 그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은 아닐까. 은행 취업을 목표로 하지 않는 대학생들이나 홍보 업계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 모든 대학생이 기업 주최의 대외활동에 매진할 필요와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 획일화된 경쟁, 과장된 개성, 길들여진 청춘

“대학을 갓 나와 철없이 패기에 차서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녀석들을 무더기로 끌어다가 콧대를 실컷 꺾어놓을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가령 면접시험관 같은 것 말입니다. 이놈들에겐 우선 합격이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게 한 다음 풀이 죽어 애원하는 눈초리를 하고 제 앞에 서 있게 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여 세상맛을 보여주면 젊은 녀석들 거리에서 철없이 굴지도 않고 세상은 훨씬 더 주무르기가 편하게 될 테지요”

이청준, 소설 「굴레」 中

 

대부분의 경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동기로 대외 활동을 시작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자신처럼 취업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예상하며 지원한 이들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받을 자극의 유형 또한 ‘더 열심히 스펙을 쌓아야겠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를 크게 넘어서지 않을 것이며, 앞서 언급했듯 과열된 경쟁으로 각박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었다.

글의 서두에 제시한 면접장에서의 ‘과장된 개성’이 나타나는 원인도 ‘다양성의 결여’에 있다. 면접장에서의 포인트는 ‘미치는 것’이라 한다. 학점, 토익, 자격증, 대외활동이라는 스펙을 놓고 경쟁하는 비슷한 부류끼리 모여 있기에 서로의 개과 차이를 과장해 내보여야 한다. 면접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OO생명 사랑해요” 따위의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연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획일화된 경쟁에 내몰려 개성을 갖지 못한 20대 전체의 것이다.

어떤 활동도 내가 장래에 취업할 분야, 취업할 곳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면 무가치한 것이 된다. 반대로 어떤 종류의 대외 활동이든 취업으로 수렴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세대의 ‘활동’은 그렇게 취업에, 그리고 경쟁에 종속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 주최 대외 활동은 안전한 도전이다. 다른 활동의 경우, 설령 그것이 유의미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어디서 ‘인증’을 받는 것이 아니므로 불안하게 마련이다. 기업 주최 대외 활동은 ‘그것을 했다는 것을 수료증을 통해 ’인증‘받고, 취업 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취업이 불안한 대학생들이 그것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청춘은 그렇게 길들여진다.

 

기도를 한답시고 촛대를 훔쳐서야 되겠는가

사례 하나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변호사의 ‘아름다운 재단’ 무급 인턴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무급 인턴을 고용하는 것이 올바르냐는 문제제기에 박 시장은 “급여 대신 평생의 꿈과 값진 경험을 주었으며 오히려 더 많은 무급인턴을 뽑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청년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상식의 편’을 자임하는 박원순 시장의 답변에 실망했다.

진보 성향의 언론 경향신문도 박 시장을 변호하기라도 하듯 당시 인턴으로 활동한 대학생들의 좌담회를 기사로 내보냈다. 당시 ‘아름다운 재단’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던 학생들은 “무급인지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돈보다 더 소중한 경험을 했다”6)고 말했다. 그렇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주최 대외활동과 공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일이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경쟁했던 일도 없었을 것이다. 소중한 경험을 했을 것이며, 돈보다 중요한 가치는 물론 많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인구 천만의 서울시를 비롯해 큰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하는 것은 큰 ‘경험’이다. 또한 공공의 복리를 위한 ‘가치’있는 일이며, 대통령 선거에 당선될 만한 ‘스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서울 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를 ‘상식’이라 여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왜 ‘노동한 만큼의 댓가를 받고 싶다’는 청년들의 당연한 주장은 이 시대의 상식이 되지 못하는가.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민 단체라고, 봉사 활동의 성격이 가미되어 있다고 해서 헷갈릴 이유는 없다. 기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촛대를 훔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자. 노동은 노동이고, 경험은 경험이다. 당연한 상식과 당연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이를 명확히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각주---------------------------------------------------

1)익명을 요구한 사람은 이니셜로 표기했다.

2)대외활동이 내게 준 것, 헤럴드 경제, 2011.4.15

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윤형 외, 웅진지식하우스, 2011

4)국회 입법조사처 1~9월 청년 체감실업률 통계자료

5)20대, 냉소적 속물들의 인정투쟁, 최철웅, 실천문학 2010년 가을호

6)희망제작소 무급인턴들 입 열다 "그들의 절망제작", 경향신문 웹장, 홍명근 인턴기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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