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엔 사회과학 서점이 없으면 그 학교를 무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것은 그 학교 학생들이 사회과학서적을 읽지 않는다는 반증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학교의 위상을 드러내는 역할이 컸다. 중앙대에는 ‘청맥’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없어진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홍기돈 카톨릭대 교수(국어국문90)

 

“이렇게 없어지면안 될 서점인데…”
청맥서점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강도구 씨는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86년 강도구(법학 79)씨가 창업한 ‘청맥’에는 세 명의 주인이 있었다. 강도구, 방현석(문창80), 이동희(문창83)씨다.


금서의 비밀 창고 ‘청맥’= “없어서 못 팔 정도였어”. 86년 개업한 청맥은 속된 말로 ‘잘나갔다’. 원래 다른 책들도 팔았지만 인문, 사회과학 서적이 너무 잘 팔리는 바람에 책을 둘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문·사회과학서만 팔았다. 강도구 씨는 “예약을 받고 주문을 해야할 정도로 호황이었고 학생들은 운동권을 중심으로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고 말했다.


청맥서점은 80년대 비밀창고이기도 했다. 강도구 씨는 “비밀창고에 금서를 쟁여두고 신원이 보장된 사람들에게만 팔곤 했다”고 회고했다. 한 번은 강도구 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청맥’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강도구 씨는 몇 날 며칠간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피해 다녀야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대학생의 은밀한 도서와 비밀스러운 시대정신이 유통되는 공간이었다.


“없어져선 안될 서점이기에”= 강도구씨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되며 서점을 인수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방현석 씨가 자청하고 나섰다. 94년 서점을 인수한 방현석씨는 “인수 초기에도 사회과학 서적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없어져선 안 될 서점이기 때문에”인수했다. 당시 주요 고객 중 한 사람이던 홍기돈 카톨릭대 교수(국어국문 90학번)는 “대학 근처에 사회과학 서점이 없는 학교를 무시하는 풍조가 있었다”며 “중앙대에는 청맥서점이 사회과학서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인문, 사회과학 서적의 인기가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청맥은 인문학 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했다. 홍기돈 교수는 “사장이 방현석 소설가였는데 당시 대표적 작가였다. 사장의 주선으로 작가 초청 행사를 진행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중앙대 90년대 학번 중 많은 이들이 ‘청맥’의 회원이었다. 그 중엔 중앙대의 교수가 된 이들도 적지 않다. 박명진 교수(국어국문학과)도 그 중 하나다. “교재나 생활서적 위주로 운영되는 서점과 달리 청맥은 인문학서적이 많아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많이 이용했다”고 말했다. 교양학부 임영봉 교수(국어국문 83)는 “중앙대 책의 제공자이고 원천이었다”고 추억했다.


재개발 붐과 경영난=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으로 인해 소규모 서점이 사라지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청맥’ 운영에 결정적인 타격은 재개발 붐이었다. 이동희 사장은 “2000년에 인수한 뒤 아동도서, 참고서 어학교재 등을 판매했다. 특히 참고서가 매출의 60% 정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순수 서적의 판매가 줄었지만 ‘청맥’은 여전히 중앙대 부근에서 유일하게 인문, 사회과학서적을 파는 서점이었다. 구내서점이 교지를 주로 판매한 만큼 ‘청맥’의 상징성은 여전했다. 하지만 아동 서적을 구매하는 젊은 부부층이 2006년경 재개발 붐으로 급격히 줄었다. 매출이 반토막났다.


‘청맥’ 다시 살아나나= 이동희씨는 “어떻게든 운영하려 했지만 결국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정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강도구씨는 “각 사회과학 출판사 등에 연락해 후원을 받아 시작할 생각도 하고 있다”는 구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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