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중앙대는 6·25 전쟁으로 6월 27일 긴급 교수회의를 열어 무기 휴교를 결정합니다. 1951년 4월 중앙대는 부산 송도 해수욕장 건물을 임시 교사로 사용하며 교육의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2020년 중앙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사상 초유의 방식으로 학사를 운영했는데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학업을 놓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1952년 다시 상경한 그때의 중앙대처럼, 우리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중앙대가 되길 기대합니다.
매년 가을 실시했던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올해는 건너뜁니다. 중앙일보 관계자에 따르면 2020년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실시하지 않는데요. 중앙일보는 1994년부터 대학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며 대학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대학평가를 연례사업으로 계속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대학 줄 세우기를 쉬어가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대학 서열이 뿌리박혀있습니다. 제3자가 만든 특정 평가지표에 얽매여 점수에 급급해하고 그 지표로 대학에 등수라는 꼬리표를 부여하죠. 옆 학교의 눈치를 보며 숫자놀음을 하는 모습이 대학
‘의혈’깃발 우뚝 세울 총학생회장 선출 이번 주는 1991년 제34대 서울캠 총학생회 선거 후 개표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오프라인을 모두 활용한 선거운동을 진행합니다. 온라인 선거는 클릭 한 번으로 결과를 바로 알 수 있는 편리함이 있지만, 한 표씩 세며 누가 당선될지 투표율을 보는 재미는 느끼지 못하죠. 아날로그 매력이 담긴 선거를 치르는 날이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23일 리더스포럼에서는 안성캠에 산재한 과제를 논의했습니다. 최재원 안성부총장(골프전공 교수)은 교육환경 개선 사업 현황과 첨단소재공학과 시설 조성 계획을 밝혔는데요. 그러나 안성캠 대표자는 남아있는 문제로 장기발전 계획 미비와 행정 서비스 불균형을 꼽았습니다. 안성캠은 1979년 4월 5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건립됐는데요. 장덕진 중앙대 후원회장은 “중앙대의 제2기를 맞는 뜻깊은 순간”이라며 “우리나라 교육사에 길이 빛날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 전했습니다. 학생 대표자와 대학본부 간
9월이지만 아직 캠퍼스로 발걸음을 떼기 어렵습니다. 40년 전 중앙대도 마찬가지인데요. 1980년 5월 17일 계엄 포고 10호로 휴교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휴교령을 내린 지 109일 만인 9월 3일에야 등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긴 잠에서 깨어난 캠퍼스는 3일, 이른 아침부터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함박웃음 속에 활기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캠퍼스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시대와 이유를 불문하고 한결같습니다. 가을하늘과 어우러진 중앙인의 웃음 소리가 캠퍼스에 가득해지길 바랍니다.
1990년 5월 양캠 총여학생회가 ‘여성학교’를 개최했습니다. 서울캠에서는 여성 노동과 취업을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고 안성캠은 ‘사회번혁운동내 여성운동의 지위와 역할’ 초청 강연과 여성학교·여성문제 ‘신문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해당 행사는 여성해방 선언문 낭독으로 마무리됐는데요. FOC(Feminism Organization in Chung-Ang University) 사업이 떠오릅니다. 지난해 서울캠 총학생회가 여성주의 확산만을 위한 모습으로
8월 31일 조갑출 간호부총장 퇴임식과 함께 간호부총장 체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12년 4월 12일 중앙대 의대 간호학과와 구 적십자간호대학이 통합됐는데요. 간호부총장 직제는 통합 전제조건 중 하나였습니다. 조항에 따라 기존 간호부총장의 역할은 적십자간호대학장이 이어받습니다. 적십자간호대학 출범식 당시 조갑출 전 간호부총장은 “정상을 향해 한마음으로 갈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는데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 적십자간호대학의 힘찬 출발을 기대합니다.
방학이 지나고 반가운 마음 반, 긴장된 마음 반으로 맞이하는 개강. 1990년 중앙대 학생들은 개강을 기념해 ‘개강맞이 떡잔치’를 열었습니다. 떡잔치에는 학생, 교직원, 청소 노동자 등 모든 중앙대 구성원이 한데 모였는데요. 떡잔치는 당시 큰 호응을 얻어 사제 간 대화의 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북적거려야 할 캠퍼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제한적 대면 개강을 맞이하는 지금과는 사뭇 대조되네요. 모든 구성원이 어우러져 개강을 맞이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위의 사진은 중앙대가 198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시행한 총장직선제 당시의 사진입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중앙대는 이사회에서 총장을 임명하고 평교수협의회와 학생회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이었지만 학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총장도 학내구성원의 손을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죠. 장영우 동문(경영학과 86학번)은 “학생들과 교직원도 총장 직선에 참여하려 했
지난달 27일 제30대 서울캠 동아리연합회 선거에 선거관리위원장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추후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1986년 12월 3일에 실시됐던 총학생회(총학) 선거에서도 부정선거시비가 있었는데요. 총학선거준비위원회는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임기를 시작한 총학을 규탄하는 벌였고 이에 총학 지지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죠. 당시 단대연합회장이
양캠에서 총학생회 선거가 한창입니다. 얼마 전 서울캠에서는 합동유세가 진행되기도 했죠. 학생들은 없고 찬바람만 쌩쌩 불었던 올해 합동유세와는 달리 1985년엔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이 가득했는데요. 사진 속 유세자이자 당시 안성캠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던 방재석 교수(문예창작전공)는 “합동유세는 수많은 학생이 모인 가운데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됐다”며
유난히 추위가 매섭던 지난 13일 대학수험능력시험이 치러져는데요. 학력고사를 대신해 94년도에 처음 도입된 수능은 올해 21회를 맞았습니다. 당시 첫 수능을 치렀던 장성주 동문(약학과 94학번)은 “첫 시험이다 보니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며 “다행히 대학 정원에 비해 응시생이 적어 유리하게 중앙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당시 소감을 말했습니다. 올해 수
1991년, 중앙대는 교육부가 실시한 대학별 입학정원 조정을 위한 평가에서 C급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이후 재단과 학내 행정에 책임을 묻고 학교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우리학교 되살리기 위한 총장님과의 공개공청회’가 열렸죠. 최기철 동문(정치외교학과 88학번)은 “당시 학교가 매우 혼란스러웠다”며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등 학내구성원들이 대응책을 찾기
사진 속 장소를 알아볼 수 있나요? 이 곳은 지금의 중대병원 건너편 거리의 옛 모습인데요. 특히 사진 왼쪽에 보이는 ‘검은돌’은 1970~80년대에 특별한 만남의 장소로 통했던 레스토랑이라고 합니다. 이명천 교수(광고홍보학과 78학번)는 “외래어 전면 금지 정책 이후 ‘블랙스톤’이 ‘검은돌’로 바뀌기도 했다”며 “가게의 업종이나 간판은 많이 달라졌지만 도로
여러분은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디를 찾으시나요? 1990년의 안성캠 학생들은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또는 친구들과 재미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안성캠 수상무대를 찾았습니다. 한우정 동문(영화학과 89학번)은 “밤에 몰래 튜브를 타고 호수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있었어요”라며 “저는 주로 밤에 친구들과 수상무대를 찾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죠”라고 말했다.
1968년 10월 23일, 효창운동장에서 중앙대 개교 50주년을 축하하는 체육체전이 열렸습니다. 승당 임영신 여사의 칠순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던 이 행사엔 중앙대학교 부속 중·고등학교의 학생들도 참여해 1만 8천여 명이 함께한 범중앙인의 축제였죠. 유석만 동문(행정학과 67학번)은“50주년 행사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니 세월
1996년도 중앙인 한마당. 학우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 수많은 공연 중에서도 장기자랑은 행사의 꽃이었습니다. 무대 위에 오른 학생들의 멋진 노래실력에 수많은 학우들이 한마음이 되어 즐거워했지요. 정우일 동문(불문학과 95학번)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즐거웠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축제의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 무대는 오늘날
다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있으시죠? 1970년대 사진학과 학생들의 촬영실기 장면은 흡사 광고 촬영장을 방불케 합니다. 변영우 동문(사진학과 75학번)은 “대형 카메라들도 동원돼 이론을 실습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스튜디오 특성상 조명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냉방 시설이 없던 그 시절에는 고충이 많았다”고 회상했습니다. 물론 뜨거운
선배들의 기억 속에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할매동산을 아시나요? 할매동산은 중앙대를 설립한 승당 임영신 여사의 묘소인데요. 당시 학생들은 이 곳을 만남의 장소로도, 임영신 여사를 그리는 장소로도 이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임영신 박사의 유골은 영신관 앞 동상 밑에 묻혀 있습니다. 성유진 동문(간호학과 04학번)은 “할매동산은 학생들에게 낮술도 하고 몰래 놀
1994년 서울캠 학생식당의 앞모습입니다. 학생들이 학생식당을 이용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데요. 당시 학생식당을 이용했던 황은실 동문(국어국문학과 93학번)은 “기다림이 지루했던 기억은 없어요. 선후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었죠”라며 그때를 추억했습니다. 2014년 서울캠의 학생식당은 3개가 운영되고 있지만, 1994년엔 하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