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무술’, ‘사람이 맹수를 이길 수 있는 무술’, ‘실전 최강 무술’…. 주짓수를 수식하는 여러 가지 문구들이다. 과장과 비약이 섞인 마케팅용 문구라 아주 동의하기는 어렵다. 여자의 힘이 아주 세거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면 남자를 이길 수도 있겠으나 그건 주짓수가 아닌 다른 무술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맹수와는 싸움을 붙여볼 수 없으니 확인하기 어렵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올해로 5년째 주짓수를 수련하고 있고 그 이유는 매우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재미있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
면접을 볼 때면 항상 들어오는 질문이다. 이번엔 필자가 여러분에게 질문해 보겠다. “1분간 자기소개 해주세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보겠다. 장점은 무엇인가?/단점은 무엇인가?/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가?/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은?/가장 극복하고 싶은 단점은? 질문에 답할 수 있었는가? 몇 개 답변했는지에 따라 여러분을 평가하지는 않겠다. 여러분은 이미 스스로에 대해 평가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날 모
2023년 2월, 막 성인이 된 나는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는 해외였다. 선택한 곳은 일본, 그중에서도 오사카와 교토이다. 그다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고등학교 시절 배운 일본어를 현지에서 사용해 보고 싶었다. 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다. 이는 나에게 자립과 독립의 의미를 전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여행 자금을 마련하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예상치 못한 감정이 나를 덮쳤다. ‘혼자’와 ‘첫’이라는 수식어가 이
작년 12월 중순, 나는 부대에서 근무 오프를 하던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올해 자과대가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어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를 진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으니 도와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비대면 학번이라 친구도 없는데 좋은 기회이다 싶어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혼자 모든 업무를 진행하기는 불가능하기에 나와 함께 새터를 진행할 친구를 섭외했다. 총학생회, 자과대 학생회의 일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던 내가 새터준비위원장을 맡고 그 친구는 총새터주체(총새주)를 맡게 되었다. 다양한 견적서를 비교하고, 더 재미있는 컨텐
이젠 진짜 뭘 해야 할까. 새해가, 새 학기가 무덤덤해지는 시기가 오면 당황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던 지루한 어른이라는 것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점점 꿈꿀 수 없을 것 같아서.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미래를 상상하자면 스케치북 하나를 전부 알록달록 채울 수 있었다. 이젠 없다. 그 모든 게 머릿속에서 맴돌다 꺼내려니 부서졌다. 고민이 많았다. 사랑하던 걸 포기해서, 날 살게 하던 것들이 더 이상 내 심장을 뛰게 하지 않아서, 많이 방황해 버린 탓에 복구하지 못하는 성적 때문에, 또 성적 따위에 쉽게 좌지우
방의 정리 정돈 상태가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똑같은 방인데 시간적 여유가 있고 컨디션이 좋을 땐 방이 깔끔하고 내게 가장 포근한 공간이 되지만, 정신없이 바쁘거나 의욕이 전혀 없을 땐 방 정리에 쏟을 시간보다 당장 업무를 처리하거나 그저 쉬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 내게 가장 불편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문득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방을 정리하라고 하셨던 말 속에는 어질러진 내 공간을 정돈하며 늘어져 있는 내 모습도 함께 변화하기를 바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인
나는 약간의 변화에도 남들보다 기민하게 유행을 포착한 뒤 곧장 시도하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능력은 프랜차이즈 회사 인턴 2년 차인 내게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기록’인데, 돌이켜보면 기록조차도 유행에 따라 새롭고 내게 잘 맞는 방법대로 실행해 나갔다.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 10년간 기록해 왔던 방법에 대해, 기록이 거쳐 온 유행을 되짚어보며 이야기해 볼까 한다. 초등학교 일기 숙제와 같이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기록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5년 중학교 시절 ‘
낭만이 만연한 세상. 유튜브에만 쳐보아도 낭만이 주제인 동영상과 그것을 동경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낭만을 말하며, 낭만을 꿈꾼다. 그만큼 이 시대에 낭만은 말하기 쉬운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세상에서 낭만은 점점 사라져 가는 듯하다. 말로만 낭만이 흔해지는 이 세상과 우리 대학생들은 모두 차가운 회색인 것만 같다. 낭만주의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도서관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아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뒤지던 와중 눈에 띄는 한 도서가 있었다. 작가 노발리스의 『푸른 꽃』이었다. 독일 낭만주의의
우리는 순간의 기억으로 살아간다. 고된 나날 속에 꺼내는 앨범의 사진처럼. 기억은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다. 기억은 명암이 있다. 같은 경험도 누군가는 밝은 빛으로, 혹은 어둡게 남겨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기억이다. 살면서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저마다 삶의 위치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의 공유는 소중하다. 때때로 기억은 우리의 의지를 벗어나 공유되기도 한다. 수험생의 기억을 꺼낸다. 수험생의 기억. 그 뜨거운 순간은 누군가의 10대 마지막이자 20대 초반의 기억이다. 또한, 시간
여러분은 대학 생활 중 인생 강의가 있으신가요? 저는 수년 전 들은 글쓰기 교양 강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년을 앞두신 교양대학 노교수님의 강의. 글은 자고로 직접 느끼고 써봐야 한다며 두 편의 에세이를 쓰게 한 뒤 이 중 하나를 발표시키시고, 이를 바탕으로 지필고사까지 내시던 교수님이셨습니다. 그저 학생들의 무난한 평점을 보고 신청한 이 강의가 제 인생 가치관을 잡아주는 ‘인생’ 강의가 될 줄은 몰랐네요. 매일 같이 양복을 다려 입으시고 수업보다 30분 일찍 와서 강의실에 계시던 교수님. 젊은 사람들을 마주하려면 깔끔하게라도
‘화난 시대’가 되면서, 세상이 참 시끄러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단지 병존할 뿐만 아니라, 공존을 위한 방도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진정한 배려는 무엇인가. 아마도 상대에게 ‘여백’을 주는 겸양의 자세가 아닐까. 노자는 ‘물’과 같은 처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은 트이면 트인 대로 가고, 막히면 막힌 대로 쉰다. 또한 물은 담는 그릇의 모양대로 담긴다. 물의 이러한 유연함과 겸양의 자세를 노자는 눈여겨본 것이다. 사람이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편
나는 SF를 좋아한다. 2019년 말,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은 후로, 나는 한국 SF 문학을 사랑하게 됐다. 사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무작정 읽으면서도, 정말 내가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던 나는, 김초엽의 단편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깨달았다. 영영 좋아하게 될 작품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이 어떤 것인지를.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 SF는 그렇게 내 전부가 됐다. SF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한다. 여전히 SF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다리를 다쳤다. 깁스한 다리를 이끌고 학교로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 건너기도 전에 빨간 불이 되어버린 횡단보도 신호, 급한 경사로 이루어진 후문 길, 생각보다 많고 가파른 계단. 등굣길이 위협적으로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다리가 나을 때까지는 교통비가 아깝지만, 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버스만 타면 학교 가는 길이 편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높은 버스 계단과 사람으로 가득 차서 디딜 수 없는 통로는 인도로 걸어가는 게 낫다고 느낄 정도였다. 다친 다리만 아니었으면 힘들지 않았을 상황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더 서러웠던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한 유명한 말이다. B는 Birth, D는 Death, C는 Choice의 약자로 문장을 풀이한다면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말은 불교의 근본적인 교의인 연기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모든 존재가 상호의존성을 띄고 있음을 설명하며 이를 통해 인간
당신은 묻는다. 지구 종말, 혹은 사랑. 당신의 화두는 둘 중 어느 쪽이냐고. 망설인다. 어느 한 쪽을 택하기보다는, 어느 한 쪽을 택하지 못함에 안타깝다. 영화 은 오늘날 우리에게 당도한 자아와 세계의 분열에 질문한다. 지구 종말과 사랑 사이, 당신은 어디를 보고 서 있냐고. 나는? 종말에 맘 졸이며 사랑에 애태운다. 취약한 세계에서 공존을 고민하는 마음과 굼뜨고 애처로운 마음, 모두 소중하다. 도시는 궁핍하고, 정치는 퇴행하며, 지구는 망가져 간다. 쇠약해진 사회를 지켜보며, 자신과 세계의 합치를 고민하
‘도둑질 빼고는 다 배워라’ 나의 부모님께서 늘 귀가 닳도록 해주신 말씀이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지만, 대학생이 되고 전역을 하며, 사회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비로소 그 말의 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새내기 때 그저 생각 없이 나가서 놀았던 술자리까지 사소하지만, 추억이 되고 경험이 된다.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유년 시절부터 정말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실패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패가 가져다주는 좌절감이나 당혹감,
‘20’이라는 숫자는 내게 정말 특별한 숫자였다. 내게 ‘20’은 또 다른 시작, 변화, 자유 등의 상징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교 3년간 나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는 20살에 대한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열렬히 갈망하였다. 내가 그토록 스물을 갈망해왔던 이유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중학교 시절 처음 가졌던 꿈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수업을 듣고 학원에 간 후 집에 와 잠에 드는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는 나의 눈에 그들의 삶은 자유로워 보였다. 나도 그들과 같은 세상에
방학이 되어 학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심적으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많아지니 뭔가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에 빠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따위의 무수한 공상에 빠지고 뒤따라오는 감정의 요동에 휩쓸린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생각을 할 때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주제로 삼곤 한다. 왜냐하면 단어로는 쉬운 이 감정이란 친구는 너무 추상적이고, 복합적이고, 인간으로 하여금 일을 그르치게도 만드는 일생의 난제이기 때문이다. 도를 깨우친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우리는 살아가며 신나는 일이 생기면 웃다가도, 화나는 일이 있으면
이 글은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아직도 이 연극이 이해가 안 돼. 배우는 연극 도중 자신이 맡은 배역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다. 그러자 배우는 무대를 벗어나 이유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지만 답은 없었다. 그가 마주한 것은 그럼에도 자신이 연기를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배우의 말을 조금 바꿔 자주 생각한다. 아직도 이 세상이 이해가 안 돼. 그것은 성인이 된 내가 세상과 마주하면서 생긴 일종의 투정이자 두려움이었다. 여전히 이 세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인 세상.
2022년 1월 1일 20살, 고등학교 내내 꿈꿔오던 순간이었다. 친구들끼리 해외여행 가기, 밤새워서 술 마시기, 대학교 MT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진하게 사랑하기, 연극부에서 배우로 무대에 서 보기 등등…. 그 어떤 것도 20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다 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 낭만이 한가득했던, 청춘에 대한 온갖 환상으로 가득 찼던 나의 20살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사실 20살이 되자마자 나의 인생이 한순간에 변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지, 오히려 무료함의 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입학을 기다리면서 내가